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문단 편집) === [[1919년]] ~ [[1923년]]: 창당 초기와 아돌프 히틀러의 가입 === 원래 이름은 [[독일 노동자당]](Deutsche Arbeiterpartei), 약자는 DAP였다. 여기에 히틀러가 "국가"를 더해 NSDAP가 되었다.[* 당명에 [[사회주의]] 를 넣은 건 [[그레고어 슈트라서]]이다. 이안커쇼 著 히틀러 1-의지-.] 처음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바이마르 공화국|독일]]의 국력이 급격히 하락하고 [[베르사유 조약]] 체결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내의 사회 혼란과 불만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던 20년대 초반,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 바이에른 주는 남독일의 중심부로 프로이센이 주도한 통일 이후에도 독립적인 분위기가 넘쳐나서 재정과 치안 등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었다. 다만 이러한 분위기는 바이에른뿐만이 아니었다. 뷔르템베르크 작센 주도 더 많은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뮌헨]] 시에서 전쟁 전 신흥 계층들이 전후 바이에른 지역에서 [[반유대주의]], [[범게르만주의]]를 추종하는 [[정당]]이랍시고 만든 조그만 단체였다. 창립자 겸 초대 당수는 [[안톤 드렉슬러]]라는 사람으로, 원래 직업은 열쇠 수리공이었지만 이미 [[독일 인민당]](DVP)[* [[카프 폭동]]의 주동자인 [[볼프강 카프]]에 의해 창당된 정당.]에서 당원으로 활동하던 경력이 있었고, 경력을 살려서 [[디트리히 에카르트]], [[고트프리트 페더]] 등의 지인들과 함께 DAP를 창당했다. 당연히 이때부터 이미 [[반유대주의]]를 내세우고 있었다. 다만 NS가 붙지 않던 시절에는 하켄크로이츠가 아닌, 단순히 녹색 동그라미에 약자를 쓴 심플한 마크를 사용했다. 사실 말이 정당이지 실질적인 능력은 아무 것도 없는 불만 많은 아저씨들의 모임 정도에 불과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기 혼란과 정치적 자유로 인해 여기저기서 난립하던 다른 군소 정당들과 차별화 되던 점이 없었고, 당원 수도 수십 명 정도로 웬만한 군소 정당보다도 당세가 적었다. 따라서 불만을 사회의 아무곳으로나 표출하게 되면서 극단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국가방위군]]에서 바에에른 지역 내부의 여러 정당들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려고 여기에도 한 병사를 보냈는데...'''하필이면 그게 [[아돌프 히틀러]]였다.''' 당시 나치당에 모여 있던 고만고만한 자들이 이런저런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걸 조사하던 아돌프 히틀러는, 되도 않을 것들을 보니 [[내가 직접 나서겠다|열뻗쳐서 참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연설을 했다고 한다. 참석 당일 아돌프 히틀러가 받은 이미지는 '별 시덥잖은 것들이 웃기고 있네' 수준이었던 모양.[* 당일 일기에 "당 기금이라는 게 용돈 수준인 놈들이 황송하게도 날 받아주시겠단다"라고 비웃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세무서장이던 아버지의 유산과 연금까지 물려받아 최소한 [[중산층]] 이상은 되었으며 광고용 그림이나 엽서를 그려 판매하는 일로 이미 평균적인 은행원의 월급보다 더 돈을 벌고 있었으니 그들이 상당히 한심하게 느껴졌던걸로 보인다.] 히틀러의 연설 능력은 [[군계일학]]이었고[* 히틀러는 길거리 그림쟁이 시절에 부랑자나 노숙자들 일부와 친해져 심심풀이로 연설을 자주 해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나치당원들은 히틀러의 연설에 압도되어 히틀러를 환영하였다. 히틀러도 썩 전망이 보이지도 않는 군대생활을 하느니 이쪽이 더 자기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조사하라고 보낸 놈이 오히려 정식으로 가입하여 당원증을 발급받아버렸다. 당원 번호는 555번.[* 당원 수 많아보이게 하려고 당원 번호를 501부터 시작하게 해놓았다. 따라서 히틀러는 55번째로 가입한 당원.] 즉, 많이 오해하는데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당의 창당 멤버가 아니다.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화려하게 걷어차고 대빵이 된 경우. 창설자였던 [[안톤 드렉슬러]]는 굴러들어온 돌 히틀러를 비난하다가 히틀러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뒤 1921년 당수에서 물러났고 1923년에는 완전히 탈당해버렸다. 일단 히틀러는 명목상 [[전쟁]]에서 [[철십자 훈장]][* 그것도 두개나 받았다. 2급과 1급. 받은 사유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부분이 많지만 어쨌건 객관적으로 굉장히 받기 어려운 훈장인 것은 사실이다.]을 받은 전쟁 유공자였고 병사 출신이라 중산층 미만 계층에서 인기를 끌만한 대중성을 지녔다. 그리고 히틀러 자신의 열광적인 연설 퍼포먼스[* 히틀러의 연설 기술은 대단한 수준으로 지금의 선전, 선동의 기본을 확립했다. 물론 이 시절에 이미 완성된 건 아니고 10여년 이상 선동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엄청난 연구와 경험을 통해 완성해낸 것이다. 그래도 상술된 대로 놀고 먹던 시절에도 연설은 이미 비공식적으로 시작했던 상황이라 기본 능력은 있었다. 또한 발전한 것도 개인의 능력뿐 아니라 괴벨스 등의 지원이 있긴 했겠지만.]와 당시 사회 불만이 크게 번져 있던 독일의 흉흉한 분위기 덕택에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히 어필했다. 그러나,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치당의 세력은 별 게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